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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 장흥 귀족호도 천덕꾸러기에서 귀족으로


씨알이 차지 않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나무가 있었다. 산비탈이나 밭 가장자리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난 나무는 열매 안이 비었다는 이유로 무수한 톱질을 당했다. 뿌리째 뽑혀 아궁이로 들어간 숫자도 적지 않다. 한때 몇 그루 남지 않아 세상에서 그 씨앗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무 팔자도 진득하게 두고 볼 일이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던 그 열매가 현재는 가장 비싼 나무 열매로 기네스북에까지 올라 있다.
어디 그뿐이랴, 한때 혀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불려졌던 이름에도 지금은 떠억하니 특허가 달려 있다. 장흥에서만 자생한다는 ‘귀족호도' 이야기다.

박물관까지 따로 둔 호두

나무 대접도 옛날과는 천지차이다. 귀족호도만을 위한 박물관이 따로 지어져 있을 정도다. 수령 100년이 지난 귀족호도나무는 장흥군 전체를 통틀어도 8그루밖에 되지 않아 그 위치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귀족호도가 현재의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대략 30여 년 전이다. 먹을 수조차 없어 ‘개호두'로 치부되던 것이 한가닥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손노리개감으로 인기를 끌면서 없어서 못 팔 정도의 지위를 누렸다.
특히 장흥지역에서는 어려운 부탁을 해야는 하나 뇌물을 건네기 무엇한 자리에 슬그머니 귀족호도를 놓고오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이름조차 없던 시절, 조심스럽게 소문이 퍼져 나가기는 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냥 “장흥 가면 좋은 호두가 있다던데” 정도로 통했다. 굳이 따지자면 ‘장흥의 좋은 호두'가 이름이었던 셈이다.
귀족호도가 일반에 알려진 것은 자비를 들여 귀족호도 박물관(장흥읍 향양리)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홍보에 나선 김재원 관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94년 장흥군 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며 귀족호도의 가치를 새삼 다시 깨달았고 번식사업에 힘썼다. 그리고 2002년 ‘왜 귀족호도는 장흥인가'라는 일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어 박물관을 만들었다.

김재원 관장은 “솔직히 귀족호도나무가 장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성에도 몇 그루 있고 화순에도 100년 이상 된 것이 있다. 하지만 태생은 모두 장흥산이다. 옛날에 장흥에서 보성 혹은 화순으로 시집이나 이사를 갔던 사람들이 옮겨 심은 것이다. 장흥에만 묶어둔다고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장흥을 중심에 두고 많이 알려낼 수 있다면 더욱 특별해진다”고 말했다.
박물관에는 한 해에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다녀간다. 뜰 앞 곳곳에 심어져 있는 귀족호도나무와 진열된 호두를 통해 그것만의 멋을 깨닫는다. 김씨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관람료도 받지 않으며 묘목을 길러 판매하는 등 보급에도 힘쓴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관람료를 대신해 옛 서책을 들고 오거나 과일을 안겨주고, 마다해도 굳이 돈 1000원을 관람료로 두고 가는 시골 노인네들도 있다.

 

“귀족호도 한 그루면 논 스무 마지기 농사”

귀족호도는 알이 굵은 것도 아니고 그 모양이 첫눈에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거닐 때마다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오솔길 같은 매력이 호두 표피 주름에 스며 있어 물리지 않는다. 굴릴 때 나는 소리도 그 시간이 오랠수록 깊고 빛깔도 좋아진다.
호두나무는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뉜다. 장흥 귀족호도는 호두나무와 재래종인 가래(추자)나무의 교잡종으로 각자의 장점만을 절묘하게 결합한 특종이다. 특히 웬만한 충격에는 깨지지 않을 만큼 표피가 단단해 어떤 호두보다도 굴릴 때 소리가 맑다.
귀족호도 한 벌 가격은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으로, 명품은 부르는 게 값이다. 벌이가 시원찮은 농촌에서 이보다 좋은 생산성을 가진 나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수령이 100년 이상 된 나무는 1년 소출로만 족히 2000만원을 헤아린다. 위선기(58·장흥읍 건산리)씨는 귀족호도 한 그루를 논 스무 마지기 농사에 견주었다.

“금으로 맹근 나무나 진배없제. 촌에서 고놈 한나만 있으문 팔자가 달라져 부렀응께.”
때문에 수확철이면 귀족호두 나무 아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설치하고 심지어 주인이 나무 아래 한 달 내내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어쩌다 자리를 비울 때는 텐트 앞에 항상 신발을 두어 사람이 있는 것처럼 꾸몄고 감시카메라까지 동원되기도 했다. 지키고 서 있을 기운이 없는 노인들은 아예 한 달 동안 사람을 사서 나무를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가치를 잘 아는 장흥 사람들은 그래서 수확철이면 아예 나무 곁으로 가지 않았다. 도둑으로 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 자란 나무 한 그루에 열리는 호두는 대략 150∼200개. 그러나 전부 귀족호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성이 있는 것은 50개 정도가 고작이며 특히 1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명품은 3벌 정도 나오면 많이 나온 것으로 친다.

귀족호도는 큰 주름의 개수에 따라 양각과 3각, 4각으로 나뉜다. 명품은 모두 돌연변이인 3각과 4각에서 나오는데 나무 한 그루에 10개 아래로 열린다. 때문에 색상과 크기 모양이 모두 일치하는 한 벌의 명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5년 이상 이 걸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죽으면서 씨앗이 된 늑룡 호두나무

나무의 숫자는 적고 100년이 넘은 귀족호도나무는 그 가격이 수 천 만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번식사업이 어려웠다. 더구나 나무가 흔해지면 가격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주인들이 가지 하나도 쉽게 내놓지 않았다.
나무 증식사업이 힘을 받은 것은 서너 해 전 수몰지구가 된 유치면 늑룡마을의 호두나무에 의해서였다. 수령 200년을 헤아리는 늑룡 호두나무가 병이 들었는데 공교롭게 마을이 수몰지구로 지정돼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나무가 힘이 없어 옮겨 심을 경우 살아날 확률이 없었다.

주인의 기증으로 김 관장은 장흥 전체를 통틀어 종자가 가장 우수했던 늑룡 호두나무를 이용해 500주의 묘목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무들은 장흥군의 284개 마을에 기증돼 자라고 있다.
김 관장은 “가장 좋은 호두를 생산했던 늑룡 나무가 죽으면서 500주의 새로운 나무를 만들었다. 문화는 감싸안고 내 것으로 지킨다고 우수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눔과 어우러짐이 있을 때 진정한 생명을 얻는다. 늑룡 나무는 그렇게 소중한 씨앗이 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