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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에서 가슴앓이 전설을 듣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불행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한 사람, 학력이 부족해서 불행한 사람, 직장이 없어서 불행한 사람, 사랑하는 이를 잃어서 불행한 사람, 나이 때문에 불행한 사람, 권력을 잡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 하지만 불행으로 삶을 엮는 일은 스스로를 어둠에 가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요인은 아프거나 힘들지언정 불행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얼마 전 고향 후배인 이정우 기자가 아들을 잃었다. 뜻하지 않는 교통사고였고, 돌이킬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비극은 우연의 탈을 쓰고 온다. 미처 한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 이번 여행에 동행하자고 하였다. 그는 기꺼이 응했다. 극단적인 고비를 넘긴 사람의 여유로움. 그에게는 그런 슬픈 여유가 있었다.

이 나라의 정남진(正南津)이라는 신동까지 가는 길은 멀다. 영화 '축제' 를 찍기 위해 장흥 남포에 왔던 임권택 감독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오지라면 강원도, 경상도 안 가본 데가 없지만, 장흥만 한 오지는 없을 것."이라고 했단다. 서울에서 광주까지도 멀지만, 광주에서 장흥까지도 시간 반이 걸린다. 거기다가 장흥에서 다시 신동이나 남포에 가려면 30여 분을 달려야 한다. 그러니 노(老) 감독의 입에서 질렸다는 말이 나왔을 법도 하다.

날이 덥다. 구름은 제 몸을 몇 번이나 뒤집으며 북으로 날아간다. 바다 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비가 올 것도 같다. 어린 시절, 마당에 보리나 나락을 말려놓고 들에서 일을 하다가, 호계 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면, "오메. 비 올랑갑다." 하면서 어머니는 달음박질을 치곤 하셨다. 우리 마을보다 호계 마을이 바다에 더가까웠기 때문에 그 쪽에서 몰려오는 구름은 영락없이 비를 동반해 왔다. 비설거지를 하기 위해 달리다보면, 어떤 때는 구름보다 느릴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나락이나 보리를 담기보다는 덕석 채로 토방에 올려놓는 게 순서였다. 구름과 사람의 달리기 시합은 겉에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일지 몰라도 뛰는 사람에게는 어떤 상품이 걸린 달리기 시합보다 절박한 법이다.
천관산은 흰 머리띠를 하고 있다. 어디선가 신선들의 바둑 두는 소리가 '딱', '딱' 하며 들릴 것 같다. 관산읍을 지나쳐 새로 뚫린 23번 국도에 오르자, 이내 신동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일행들과 나는 눈에 보이는 지명들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한다. 죽교, 내송, 저곡을 지나쳐도 신동리는 보이지 않는다. 저곡이라는 지명에는 돼지 저(猪)에 골 곡(谷)자가 쓰였을 것이라는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 확인된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는 소설이 된다. 돼지 저(猪)자가 들어간 마을이니, 부자가 나오겠다는 말도 나온다. 굶은 사람 없겠다는 말도 나온다. 저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은 있을 법한 세계를 그린다. 이내 신동이다.
바닷가 모래에서 금을 채취한 곳이라는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은 국토지리정보원이 밝힌 경도 126도 59분 위도 34도 32분에 자리한 지역으로, 서울의 광화문과 경도가 같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정남진이다. 정남진 조형물 앞에 서자 고흥반도의 온갖 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날이 맑을 때면 지척인 듯 가까이 보이는데, 흐린 탓에 가슴앓이 섬만 뚜렷하고 나머지는 엷은 먹색이다.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던 김운규(69세) 옹에게 섬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여게 완도. 금당도." 나는 노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쪽을 보면서 이름을 헤아린다. 손가락은 어느새 고흥반도 쪽으로 향해 있다.
"저게 금당도, 고 옆이 금산, 김일이 고향. 녹동, 소록도, 글고 쩌가 고흥. 그 옆이 득량도 장환도. 글제."
연꽃잎처럼 솟아있는 섬들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꽃속인 듯 아늑하다. 방파제엔 낚시꾼들이 많았다. 돔이 잘 낚인다고 하였다. 지금은 돔이 올 때가 아니지만, 손바닥만 한 돔들을 십여 마리씩 잡아놓고 있었다. 정남진 신동리. 이곳은 소설가 이승우의 고향이다. 출렁거리는 바다를 본다. 먼바다에서는 바람이 거센지 파도가 높다. 조그마한 가슴앓이섬은 살빛이 붉은 여인네의 젖가슴 같다. 소설가 이승우의 '샘섬'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다.
샘섬의 주인공인 남자는 고향을 떠난 후 20여 년만에 돌아와 옛날엔 마을의 축복이었던 샘섬을 복원하기 위해 전 재산을 바친다. 그에게 샘섬은 원죄의 장소였다. 한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샘섬에 숨어있던 마을 장정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그. 그는 수많은 목숨의 댓가로 사랑하는 여인을 얻었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누구의 씨인지 모르는 아이를 가진 여인을 마을 사람들은 단죄하고,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면 살려 주겠다고 하지만 여인은 입을 다문 채 아이와 함께 죽고 만다. 누설했을 때는 분명 자신의 숨겨둔 남자가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얻었으나 이내 잃어버린 남자는 바로 고향을 떠나고, 늘그막에 돌아와 파괴된 샘섬을 복원하려 하지만 끝내 실패한 채 그 섬에서 죽어간다.
사랑이란 그렇게 지독한 것이던가. 한 마을의 장정 30여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사랑이던가. 또한 자신과 뱃속의 아이를 잃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사랑이던가. 섬을 보는 내 가슴이 아려온다. 김운규 옹에게 가슴앓이 섬에 얽힌 전설을 묻자, "신배산에서 서산봉하고 날날이 있는디, 검은바구라고 있어. 검은바구에서 거문고를 티고(치고) 글먼 인자 머라고 그라는디, 나는 그것밖에 몰라. 쩌리 돌아가서 첫 집에 가먼 주운개 씨라고 그분이 잘 알어."

"어르신! 젊어서는 저 섬에 가서 많이 놀기도 했지요?"
짓궂은 질문에 김옹의 표정은 몇 번이나 구겨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어떤 회한 같은 것이 주름 이랑에서 꿈틀거렸다.
"전에 어떤 어르신 말씀에 의하면, 저 가슴앓이섬에서 처녀 총각이 연애를 많이 해서 결혼할 때가 되면, 섬을 보고 가슴앓이를 앓는다고 해서 섬 이름이 그렇게 되었다고 하던데요?"
김옹은 실룩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가슴앓이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인자 와서 멋을 숨키겄능가? 그란 것도 있었제. 암, 없었다고는 안 해."

 

전설이 아니라도 섬은 젊은 남녀가 가슴앓이를 했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물이 빠졌을 때도 열 평 남짓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바위섬. 정면에서 보면 섬의 모양이 처녀의 젖가슴처럼 불룩 솟아 있다. 가슴앓이섬의 전설을 잘 안다는 주운개 옹을 찾는 것은 쉬웠다. 김옹이 알려준대로 마을로 들어가서 첫 번째 집에 들어가자, 한 노인이 축사의 오물을 치우고 있었다. 고슬고슬해진 소똥이 식물의 뿌리에 닿으면 금세 과일과 야채로 변할 것처럼 여겨졌다.
"주운개 할아버지 되세요?" 물었더니 "맞다."고 하였다. 가슴앓이섬 전설에 대해서 듣고 싶어 왔다고 했더니, "나도 잘 몰라."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십여 마리가 되는 소들의 엉덩이엔 똥딱지 하나도 묻어있지 않아, 주인의 손길이 자주 갔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지리학적으로 말하면 서산봉이라는 산이 있는디, 서산봉 서하에 선인무수(仙人舞首 : 춤추는 신선의 머리)라는 명당 자리가 있었드래요. 가슴앓이를 가금도라고 하는디, 가야금이라고 해서 가금도라고 하는디, 저그 뽀짝에 묻혔는디, 거멍바구라고 있어요. 팽야 거문고라고 하는디, 모래미 가먼 선들바구라고 독(돌)이 있어라. 손 수(手)자. 팽야 손이란 얘기여. 선인이 춤을 추는 어깨자락이라 이 말이여. 그 이상 누가 알 사람 없을 거여. 저 앞에가 바다가 칠기섬이라 있어. 일곱 칠(七), 기생 기(妓)자. 일곱 기생이 놀고, 긍께 선인이 좋다고 춤을 추제."
풍수에서 이 인근의 지역을 선인무수(仙人舞首)형이라고 하는데, 가슴앓이섬은 가야금에 다름 아니고, 거멍바구는 거문고를 뜻하는 것이며, 앞쪽에 일곱 기생을 뜻하는 칠기섬이 있으므로, 신선이 춤을 춘다는 내용이다. 거문고, 가야금 소리에 맞춰 신선이 춤을 추는 곳이니, 관광지 개발로는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주옹의 말을 뒤로 하고 모래미라는 곳으로 향했다. 모래미는 금모래밭을 뜻하는 사금 마을의 동쪽에 있다. 할머니 두 분이 널브러진 그물 위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본명이 김찬임(75세)이라는 여수댁 할머니와 끝까지 이름 밝히는 것을 마다하였던 우산댁 할머니가 그들이었다. 선들바구가 어떤 바위냐고 묻자 바로 등뒤를 가리켰다.

"여가(여기가) 옛날부터 흔들바구, 선들바구. 쩌어그는 문지끄테. 쩌어그는 달바구."
"왜 선들바구라고 했대요?" 물었더니, "바구가 많이 있어갖꼬 선들선들하다고. 저 바구가 산뎅이 같이 크단디(커다란 데) 포크레인 갖꼬 조사부렀제. 그라고 나서 안 좋와. 짤씀한 디, 쩌가 동네여라우."
개발을 한답시고 해안도로를 뚫다가 선들바위를 포크레인으로 부숴버렸다는 얘기였다. 할머니의 손끝을 따라가니, 해안도로 공사로 장환도의 중턱이 뻘겋게 드러나 있었다. 한참 동안 할머니들과 함께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여수 삼산 거문도가 고향이라는 김찬임(75세) 할머니는 나이에 비해 얼굴이 고왔다.
"열 여섯에 수물(스물) 하나 묵은 신랑한테 와 갖꼬 이라고 살어. 신랑이 부잣집 아들이어 갖꼬 뒤집어진 고무신도 다시 안 뒤집어."
할머니는 부잣집 아들이었던 신랑이 일에는 손끝도 대지 않았다는 말을 ?뒤집어진 고무신도 다시 안 뒤집는다.?는 비유를 써서 잘도 표현해 냈다. 귀명창이 많고 글자랑 함부로 하지 말라던 장흥이 아니던가. 이기자도 나도 어느새 온몸이 숯불처럼 벌게졌다. 햇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